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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농업통계 인력 1,300명’ 시절의 딜레마
- 12기 김현균
- 조회 : 1294
- 등록일 : 2019-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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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통계 인력 1,300명’ 시절의 딜레마 | |||||||||
[이재형의 통계 이야기] ⑳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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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김대중 당선자 앞에는 수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었다. 그해 가을부터 시작된 외환위기로 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우리 경제는 IMF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 IMF는 우리나라에 강력한 개혁을 요구했다. 우리는 IMF 요구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구조개혁의 필요성에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공공부문, 금융, 재벌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개혁이란 말은 쉽지만, 기존의 이해관계나 기득권 관계를 크게 바꾸기 때문에 격렬한 사회적 저항이 따른다. 그렇지만 국가 부도라는 미증유 사태를 맞아 어쨌든 개혁 작업이 추진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