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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비뉴스 편집실
흑해 남부 아나톨리아, 금관 발상지
- 숑숑
- 조회 : 1347
- 등록일 : 2019-06-11
김문환의 유물 풍속 문화사 | ||||||
㊷ 흑해 남부 아나톨리아, 금관 발상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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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무덤의 고구려 솥에서 찾는 금관 기원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보자. 1946년 경주 노서리 고분군의 적석목곽분 호우총(壺杅塚)에서 출토한 유물이 눈길을 끈다. 해방 뒤 우리 손으로 진행한 첫 발굴 유물 가운데,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乙卯年國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호우(壺항아리, 杅사발)가 반긴다. 호우총이란 이름을 안겨준 청동 그릇이다. 을묘년은 장수왕 3년 415년으로 413년 광개토대왕이 죽은 지 2년 뒤다. 광개토대왕 비문이나 충주 고구려 비문처럼 예서체 한자로 쓰였다. 광개토대왕 장례 기념품을 신라 왕릉 급 무덤에 부장한 점은 신라와 고구려의 관계를 잘 설명해 준다. 앞선 글에서 살펴본 대로 신라의 금동관 역시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 새 깃털 형상의 금동관이나 관모 금장식이 이를 말해준다. 문물은 고구려에서 신라뿐 아니라,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흐른다. 유라시아 대륙 북방의 초원길을 통해 기마민족이 전파한 금관이나 금동관, 관모 금장식도 마찬가지다. 신라, 가야, 마한, 백제, 고구려, 일본을 넘어 몽골초원의 선비족과 훈족, 중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월지와 스키타이, 흑해 연안 스키타이, 지중해 연안 그리스 로마까지... 이제 금관 문화 탐방의 종착점, 인류 역사에서 금관은 언제 어디서 처음 시작됐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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